인니뽄 매거진 : 한국까지 펴져간 젊은이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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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2월12일 08시55분 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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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까지 펴져간 젊은이의 카리스마
아무로 나미에

 

dorayaki2006.pixnet.net/blog/post/15749584

 

Prologue -

 

그녀의 나이는 31살이다. 하지만 식을 줄 모르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일본인과는 다른 생김새, 그리고 흔치 않은 패션 센스는 그녀를 일본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바로 아무로 나미에.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이후 서른 살이 넘어서도 그녀의 인기는 여전하다.

 

세상이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다

 

1977 9 20, 삼남매의 차녀로 태어난 그녀는 쟈넷 잭슨을 동경하며 노래와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에 다녔다. 걸어서 무려 1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였지만 그녀는 일주일에 세번씩 빠지지 않고 꼬박 꼬박 다녔다.

 

1992, 14살의 어린 나이에 5인조 그룹 <스파몬키즈>의 일원으로 데뷔를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그녀가 수퍼스타가 되어 있지만 데뷔 당시의 그녀는 완전한 무명이었다. 각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프로 모션을 해도 좀처럼 반응도 없었고 히트곡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완전히 솔로로 전향을 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그녀가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코 그녀가 잃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꿈, 그것이었다.  

 

1996, 드디어 그녀의 싱글  Dont wanna cry, Youre my sunshine, a walk in the park」가 연달아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면서 세상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갈색 머리 롱 헤어, 미니스커트, 통굽 부츠 등은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그녀를 따라하는 젊은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말하는 아무로 현상이었다.

 

ja.wikipedia.org

 

히트 작곡자 코무로 테츠야의 참신한 노래와 지금껏 일본에서 볼 수 없었던 격렬한 댄스, 그리고 그녀의 스타일이 묘하게 조화되어 그녀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갔다. 그녀의 곡이 히트 차트에서 내려올 때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다녔던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마저 주목을 받기 시작해 그녀의 인기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mainichi.jp

 

행복한 나날들 끝에 만난 최악의 나날들

 

1997,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앨범 「SWEET 19 BLUES」마저 대히트를 했다. 수많은 히트곡과 뛰어난 패션감각은 역시 아무로 나미에를 연발케 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또 한번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바로 자신의 댄서와 결혼을 발표했던 것이다. 또한 그때는 이미 임신 3개월이었다. 그녀는 1년간 일을 쉬고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 일을 쉬는 모습은 모든 대중들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진 것도 사실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98 12, 그녀는 홍백 노래 자랑을 통해서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NHK 홀 스테이지에 나타났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가 흘러나왔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켠에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복귀는 매우 순조로웠고 또다시 절정의 인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극적인 복귀를 완수하고 993 17일 싱글 「RESPECT the POWER OF」를 발매하게 됐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로 나미에 인생에서 최악의 날로 손꼽힌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녀의 친어머니가 의붓동생(아무로의 숙부)에게 살해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정신적인 쇼크를 받았으며 훗날 그녀는 그때, 정말로 진지하게 은퇴를 생각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2002 7 10, 남편 SAM와 정식으로 이혼을 하게 됐다. 친권은 SAM에게 건넸지만, 양육권은 그녀가 가질 수 있었다. 결국 2005년 그녀는 싱글맘이 되었다.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자신의 이혼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있어서는 괴로운 4년이었다.

 

y-ujiie.cocolog-nifty.com/blog/2008/05/best_rb_video_9b73.htm

 

그러나 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 끝까지 자신을 버팀목 응원해 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준 아들. 여러가지 생각했던 그녀는 하나의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양팔에 문신을 하는 것이었다.

왼팔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JUN. 30 in 1950          1950 6 30(모친의 생년월일)

My mothers love live with me     어머니 사랑은 나와 함께 살아 있는

Eternally in my heart          나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R.I.P  rest in peace                     (편하게 잘 수 있다)

MAR. 17 in 1999         1999 3 17일(모친이 돌아가신 날)

 

HARUTO

(* 아들의 이름)

 

오른 팔에는 자신의 생년월일을 새겨 놓았다. 

 

만나보지 못한 나를 만나기 위해

 

그녀는 2001 think of me/no more tears」을 마지막으로 작곡가 코무로의 곁을 떠나고 이후

R&B, HIP HOP 을 지향한 곡을 발표하고 있으며 스스로 작사를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2004 5월에는 대만 및 한국·서울에서 첫 아시아 투어를 성공시켰으며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의 젊은이,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여성 솔로 아티스트 싱글 매상 역대 1위를 비롯한 수 많은 기록을 갈아치운 그녀는 31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음악계를 견인하고 있다. 현재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 규모가 될 아레나 투어「namie amuro BEST FICTION tour 2008-2009」를 개최 중에 있다. 그녀는 오늘도 무대에 선다. 아직 만나보지 않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www.excite.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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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서 기자 (ysjjang@innipp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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