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실제하지 않는자의 실질적 영향력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히카루 겐지는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저술에서 그려진 가공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벌써 여기서부터 의문이 들 수 있다. ‘가공의 인물’이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고?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좀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다. 타이쇼, 유명한 역사학자인 쓰다 소키치박사는 ‘실증적인 역사 연구’를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역사 연구에 있어서 감상을 철저하게 떨쳐냄으로써 탄탄하고 견고한, 그리고 사실적인 학풍을 추구한 것이다.
그는 일본의 신화와 고대사를 다룬 여러 가지 문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일본의 신화와 천황제를 부정하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서 쇼와 10년 당시 학계는 상당히 흥분을 했다.
‘쓰다는 괘씸하다. 일본의 신화, 천황 일가의 성립에 있어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저작은 ‘황실의 존엄을 침범한다’는 비난 여론이 높았고 결국 그는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가 되었다. 마지막에 그는 시효 때문에 결국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발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해명을 했다.
“ 신화는 역사적 사건의 기술은 아니지만 사상상의 구성으로 보기에는 어울린다 “
즉,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모두가 믿어왔기 때문에 ‘사상상의 구성’은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럴 듯 해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주변으로부터 학문적 위협을 받고 있는 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해명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에서 쓰다 박사가 ‘사상상의 구성으로서 존재 할 수 있던 전형’을 바로 히카루 겐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 오늘의 일본에 있어서도 히카루 겐지만큼이나 평안귀족, 혹은 귀족정치가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사상상의 구성’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안 귀족을 이미지화하거나 그들의 정신세계를 상상하는 것에는 이 ‘겐지 모노가타리’만큼이나 유용한 것은 없다. 또한 그것은 일본인의 생각이나 가치 기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히카루 겐지는 비록 가공의 인물이지만 분명 ‘일본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정치가’ 였던 히카루 겐지는 어떤 식으로 일본에 영향을 주었을까?
▶ 이상한 정치가의 등장
우선 첫번째로 그는 ‘일본적인 귀족정치가’ 또는 ‘품위있는 사람’의 원형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자주 ‘히카루 겐지’ 스타일의 정치가가 나타나게 된다. 일견 품위있고 인품은 좋을 것 같지만, 현실적인 정치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의지마저 없고, 재무나 행정 등에 관한 실무에는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는 스타일의 정치가이다.
사실 이런 사람은 정치가라고 칭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명 그런 사람이 생겨났다는 것이고, 그것에 따라 또다른 하나의 결과들이 분명히 파생된다는 점이다.
보통 지도자들은 뭔가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지도자의 의무이자 책임이고 또한 높은 보수와 명예를 얻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만약 지도자가 그것들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 지도자가 안하면 우리가 하지 뭐
그때부터 생겨나는 것은 바로 ‘집단적인 의사결정 구조’이다. 바로 아랫사람들이 전부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상당히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개개인이 따로 따로 행동하게 되어 결국에는 최종 책임의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혼란기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전국 시대나 에도 막부 말기 유신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세상이 안정이 되기 시작하면서 금방 리더쉽 거부 현상이 나타나고 집단주의적 의사결정구조가 또다시 발흥하는 것이다.
20 세기에 와서도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정치나 경영에서 꽤 개성이 강한 지도자가 여럿 배출됐다. 그들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내고 사업을 일으키면서 대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지 30년이 되는 1970년대가 되자 또다시 ‘우리 모두가 함께 결정하면 좋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서로 모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로 정해지는, 아니 분위기로 정해지는 기분이 들게 된다.
“아니, 뭐 특별한 반대가 없어서…”
“회의에서 별로 대단한게 논의된 건 없는데…아, 결국 통과가 된 거구나”
정말이지 모두들 ‘두둥실 떠다니는’ 상황이 벌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집단지도’와 ‘집단주의적 의사결정’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집단지도’는 여러 명의 상부조직이 의사를 결정하고 하부조직을 리드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집단주의적 의사결정은’ 조직 전체의 분위기나 구성원 모두의 기분이 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여러 구성원들은 빈번히 만나 ‘지금 상황은 어떠냐?’, ‘최근의 분위기는 ~ 하던데’라는 식의 ‘페이스투 페이스(face to face) 방식의 정보 교환을 반복하게 된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그려진 히카루 겐지의 살롱은 확실히 그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살롱에 출입해 달구경을 하기도 하고 단가(短歌)도 부른다. 또 서로의 안부도 물어가면서 일종의 정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일본의 정계와 재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게 된다. 교제비, 교통비, 복리후생비 등이 그것이다.
1994년의 세무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민간기업의 총교제비는 5조 87억엔. 버블 붕괴 후의 상당히 긴축조정을 하기도 했다. 92년도에 비하면 무려 8000억엔이 줄었다고 하지만 이는 미국의 5배, 독일의 6배이다. (GNP 당 기준)
교제비는 영업에 필요하다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내 및 그룹 기업간으로의 face to face에 의한 정보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그 집단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서로의 사고나 상태, 집단의 의향을 조정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여비와 교통비가 많이 들게 마련이다. 1994년 일본의 여비, 교통비는 총 14조엔이
다. 이 역시 미국이나 EU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복리 후생시설을 만들어 사원 전체를 ‘공동체
화’시켜나가게 된다.
▶ ‘얼룩지는’ 관계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가 정계쪽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얼룩짐의 인간관계’라고할 수 있다. 또한 화단, 문단
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룩지어지는’ 관계가 이뤄졌다. 이 관계는 은유적으로 해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의 색깔을 향해 달려나가는 과정’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 개개인은 본인 스스로의 유능함보다는 인간관계, 능숙한 사교술이 중요시 되는 ‘히카루 겐지 스타일’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중국 등 과거 아시아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엄격한 시험에 의해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고 그가 점점 리더로 커가게 되며 또한 그는 강력한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이것은 그를 평가하는 엄격한 기준이기도 했다.
특히 명대 이후는 주자학에 의해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지주의’를 보급하면서 ‘지식이 풍부한 인텔리’가 매우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일본에는 ‘아오시로키 인텔리’라는 말이 있는데, 지식인이나 독서인을 향한 일종의 ‘경멸’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평안 귀족은 물론 지식도 있고 한문 서적도 많이 읽지만 그 지식의 유무가 그의 품격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행동거지를 미롯한 고귀한 미의식,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주는 단가 등이 중요하다. 히카루 겐지는 잘생긴 외모와 인기로 인해 태정관의 최고 장관이 될 정도였다. 그는 존경은 받고 있었지만 ‘단가의 명인’이라고도 할 수 없고 논어에 주석을 달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인도 아니었다.
이는 일본 상류층의 자녀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상류계급은 극기심과 주의깊음을 통해 ‘강한 아이’를 길러내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히카루 겐지식의 교육을 시킨다. 아이를 감싸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일본 상류계층의 교육은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에서도 히카루 겐지의 삶은 동경의 하나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점점 국제화되는 시대에서 히카루 겐지의 스타일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