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1400년간 일본인의 마음을 지배하다
쇼오토쿠 타이시 역시 일본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한명이다. 1960년대까지 태어난 사람이라면, 구5천엔권이나 1만엔지폐에 그려진 쇼오토쿠 타이시의 초상화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다른 왕자와 함께 그려진 초상화의 일부이며, 어느정도 사실적인지에 대한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쇼오토쿠 타이시의 얼굴’로 알려져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종교나 문화의 면에서도 태자에 대한 전설은 많다. 80년대 후반에는 쇼오토쿠 타이시를 그린 만화책이 젊은 사람들의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다. 사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인 일이 극화가 되어 지금도 팔리는 일은 좀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쇼오토쿠 타이시가 ‘일본을 만든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1400년간이나 일본인의 마음을 지배해온 종교관인 ‘신·불·유 습합 사상’의 발안자이며 실천자이기 때문이다.
▶ 종교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
그렇다면 이 종교는 어떤 것일까. 일본 토착의 종교인 신도와 인도에서 중국,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유입된 불교, 그리고 생활 규범적 도덕률인 유교가 함께 발맞추어 가는 사상이 바로 ‘신·불·유 습합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일본인의 종교관, 문화관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외국의 문화나 기술을 도입할 때에도 그 대응방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일본에 이 습합 사상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본에서는 중교 자체가 중요한 대립축이 되지 않아버린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에도 그것은 그저 하나의 종교에 불과할 때 신앙의 차이 자체가 일본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일본인들은 종교 전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중동의 문제 등 종교의 차이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웠던 일은 쇼오토쿠 타이시 시대의 소가 · 모노노베가 싸운 이후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역시 이는 쇼오토쿠 타이시의 종교정신, 시대정신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쇼오토쿠 타이시가 태어난 것은 고대국가가 정착하는 시기, 즉 6세기의 후반이다. 고대 시대에는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륙으로부터 유입된 기술이었으며 이 기술이 유입될 때 다양한 사상과 종교도 함께 일본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때 조선은 삼국시대의 혼란기였으며 이때 뛰어난 기술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일본으로 들어오게 된다. 또한 중국에서도 여러가지 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였다.
태자는 곧 성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고려에서 건너온 혜자로부터 불교를 배워 ‘법화경’을 해설하기도 했고 또 불상도 만들고 불교 건축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불교에서 만큼은 태자가 불교학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불교를 포교하는 것은 물론 개인 절인 호류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불교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17조 헌법’, ‘관위 12단계의 제’ 등 국가 제도를 만들어 일본을 호족 지배의 나라에서 관료제도가 갖추어진 행정 조직의 나라도 바꾸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본격적인 외교를 시작해 최초의 공식 외교 사절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한국과도 다른 별개의 독립국가이며 대등한 나라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도 했다.
▶ 자, 근데 이 불교를 어떡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그가 불교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일본 고대의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기존 신앙을 가진 사람을 탄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원조를 해주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의 종교관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태자는 개인으로서는 불교도였지만, 정치가로서는 천황가의 일원이며, 또한 국민들의 보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바로 이러한 모순을 윤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바로 ‘신·불·유의 습합 사상’이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 대립이 없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라고 할수 있다. 일본에서 종교 대립을 주제로한 전쟁이 없어진 것은 쇼오토쿠 타이시라고 하는 천재가 나타나 습합 사상을 전했기 떄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이러한 사상은 불교를 비롯한 선진 문명의 채용과 신화에 의지한 천황가의 입장을 양립시켜 줌으로써 ‘고뇌하는 일본’을 구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보급되어 점차 세련되어진 이론으로 정착되어 나갔으며 결국 국가의 사상체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이른바 ‘예와(좋은 것만 취한다)’라는 발상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습합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사회 생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은 특유의 ‘직연주의’라는 것으로 표출됐다. 일본에서는 종교집단의 강력한 결속력이 없기 때문에 직장이 이를 대신하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직장 생활에 방해가 되는 종교적 계율이나 집회 행사 등을 용이하게 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일본의 ‘economic·애니멀적인 성격’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예와’의 발상과도 큰 연관을 맺고 있다.
▶ ‘예와’가 답이다!
또한 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거기에 있는 사람을 중시하는’ 사고 방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종교는 신과 자신이 마주보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이렇게 신을 경유해서 맺어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이러한 생각들이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와의 정신에 따르면 오늘 불씨에게 기원을 하고 내일은 신에게 기원을 하고, 모레는 하늘에 기원을 해도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속해 있는 인간 관계이다. 바로 이것이 일본적인 직장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어, 이른바 「회사 인간」이란 대집단을 만들었던 것이다
태자는 외래의 불교의 보급에 최대의 공헌을 하면서, 일본 문화의 원류를 만들어 내는 큰 일도 함께 해냈다. 오늘의 일본인이 쇼오토쿠 타이시로부터 받은 최대의 영향은 선택적인 이용과 활용이 가능한 ‘예와’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